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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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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나-고랜드 전쟁과의 비교 == 사비에트-고랜드 전쟁은 20여 년 뒤 벌어진 [[루이나-고랜드 전쟁]]과 자주 비교된다. 두 전쟁은 초강대국이 고랜드에 직접 군대를 보냈다가 수렁에 빠졌다는 점에서 닮았고, 루이나 안에서는 "사비에트의 실수를 보고도 그대로 되풀이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bgcolor=#536349><color=#fff> '''구분''' ||<bgcolor=#536349><color=#fff> '''사비에트-고랜드 전쟁''' ||<bgcolor=#536349><color=#fff> '''루이나-고랜드 전쟁''' || || 기간 || 1979~1989 || 2001~2021, 재개입 진행 중 || || 최대 병력 || 약 115,000명 || 약 120,000명 || || 연인원 || 약 620,000명 || 약 775,000명 || || 주적 || 무자헤딘 || 탈레반·알자미아 || || 현지 동맹 ||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 || 고랜드 민주공화국 정부 || || 결과 || 철수 뒤 정권 존속, 1996년 수도 상실 || 철수 직후 수도 함락, 재개입 || 닮은 점은 여럿이다. 두 나라 모두 최대 10만 명 남짓의 병력 가운데 실제 전투병력은 1만 명 수준이었고, 도시와 간선 도로를 점과 선으로만 통제했다. 두 나라 모두 면을 장악할 대규모 증파를 검토했으나 정치적·외교적 부담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두 나라가 떠받친 현지 정부는 외국군의 꼭두각시라는 선전에 취약했고, 적은 국경 너머의 은신처와 외부의 지원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국내에서 전쟁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쟁을 끌었다. 다른 점도 분명하다. 사비에트는 통제력을 잃은 공산 정권을 바로잡으려고 들어갔고, 루이나는 알자미아를 비호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루이나가 지상에서 손잡은 상대는 1980년대에 무자헤딘을 무장시켜 무너뜨리려 했던 바로 그 공산 정권이었다. 루이나는 2001년 [[벨포르 협정]]으로 고랜드의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공산 정부군과 함께 탈레반을 공격했고, 사비에트는 탈레반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위 표에서 두 전쟁의 현지 동맹이 같은 정부인 것은 이 때문이다. 사비에트가 떠난 뒤 나지불라 정권은 7년 동안 수도를 지켰지만, 루이나가 떠난 2021년에는 같은 정부가 몇 달 만에 아바나를 내주었다. 가장 큰 차이는 그 뒤다. 사비에트는 한 번 빠져나온 뒤 다시 돌아가지 않았지만, 루이나는 국제안보지원군을 다시 보내고 2023년 이후 해마다 12억 달러 이상의 군사·재정 원조와 특수전 부대, [[플라자 그룹]]의 민간군사기업까지 투입하며 다시 전쟁에 발을 들였다. 무엇보다 두 전쟁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져 있다. 루이나가 사비에트를 몰아내려고 무장시킨 전쟁의 부산물, 곧 난민촌 마드라사에서 자란 탈레반과 아랍 의용병 네트워크에서 나온 알자미아가 루이나가 싸우게 될 상대가 되었다. 루이나의 한 군사사학자는 이를 두고 "사비에트는 고랜드에서 전쟁 하나를 졌고, 루이나는 그 전쟁을 이긴 대가로 다음 전쟁을 얻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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